일본은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
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에도 시대의 거리 풍경을 오늘날까지 전하는 미관 지구가 있는 구라시키시에 살다 보면 특히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된 강연회가 2026년 7월 24일(금)에 열렸습니다.
「제70회 오하라 마고사부로·소이치로 기념 강연회」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기재된 내용은 2026년 9월 기사 게재 당시의 정보입니다. 현재 정보와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제70회 오하라 마고사부로·소이치로 기념 강연회 소개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창설한 「구라시키 일요 강연」은 마고사부로가 세상을 떠난 뒤 장남 소이치로가 이어받았습니다.
소이치로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이름과 형식을 바꾸면서 시대를 넘어 계승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익재단법인 유린회」가 주최해 매년 1회, 7월 하순경에 「오하라 마고사부로·소이치로 기념 강연회」를 개최합니다.
2026년 7월 24일(금)에 열린 강연회는 제70회라는 뜻깊은 자리로,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 이노우에 쇼이치 씨가 강사로 나서 「일본의 거리 풍경을 구라시키에서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강연 「일본의 거리 풍경을 구라시키에서 생각하다」

강연을 시작하며 이노우에 씨는 강연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학자다운 방식으로 근거를 갖춰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계 데이터를 활용해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평소 생각해 온 것, 젊은 시절 건축가를 꿈꾸던 때 생각했다가 그 후 한동안 생각하지 않게 된 것에 함께해 주시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는 일본인이 흔히 「조화를 중시하는 민족」이라고 평가받는다는 내용으로 시작했습니다. 문부과학성이 유학생을 위해 발간한 안내서에도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민족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을 공부한 이노우에 씨는 거리 풍경을 보면 정반대의 느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대도시의 번화가를 떠올려 보세요. 옆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건물이 얼마나 있을까요? 거의 하나도 없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교토의 가와라마치도리를 예로 들며, 산조에서 시조에 이르는 구간에는 「옆 건물에 맞춰 줄까 보냐」라고 말하는 듯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파리 번화가인 오페라좌 주변은 나폴레옹 3세 시대의 분위기에 대체로 맞춰져 있습니다. 비슷한 색과 형태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어디를 걷는지 알 수 없게 되고, 길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조화를 중시하는 곳은 오히려 유럽의 번화가입니다. 개성이 두드러지는 곳은 일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난간 없는 강과 난간을 요구하는 행정
이노우에 씨는 일본과 해외의 차이를 「난간」을 통해 이야기했습니다.

「물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베네치아에는 운하에 난간이 거의 없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빠지는 일도 있습니다. 이노우에 씨도 젊은 시절 그런 장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베네치아는 운하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건강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건강보다 역사를 더 중시하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오사카의 도톤보리에는 높은 난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상한 사고가 발생해 행정의 책임을 추궁당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어서 교토의 타임즈(이하 「타임즈 빌딩」으로 표기)에 관한 일화가 나왔습니다.

다카세강과 산조도리가 교차하는 산조 고바시.
그 남서쪽에 세워진 타임즈 빌딩은 다카세강 쪽으로 플랫폼을 내밀고 있으며, 난간이 없습니다. 설계자는 안도 다다오 씨입니다.
이노우에 씨는 안도 씨에게 들은 「교토시청이 상당히 강경하게 난간을 설치하라고 했지만, 이를 거부했다」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이노우에 씨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정말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타임즈 빌딩에는 난간이 없습니다. 이노우에 씨가 교토의 건축가들에게 물어보니 「안도 씨니까 가능했던 거죠」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타임즈 빌딩에서 다리를 건너 북쪽에 새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그곳도 다카세강 쪽으로 플랫폼을 내밀고 있습니다. 다만 작은 난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일대에서 다카세강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안도 다다오의 고집 덕분에 성립한 풍경입니다. 행정은 깊이가 2cm나 3cm밖에 안 되는 강에도 난간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만일 사고가 났을 때 난간이 없는 상태로 허가한 시청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도록 도시를 만드는 셈입니다」
「우리는 행정으로부터 상당히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주장일 수 있지만, 우리의 평균수명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난간 덕분일지 모릅니다」라고 말한 뒤, 곧바로 「이건 지나친 주장입니다」라고 거듭 덧붙였습니다.
로마 첫 공습과 이탈리아의 결단
또 하나 오랜 시간을 들여 이야기한 주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노우에 씨는 먼저 일본의 연표를 소개했습니다.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격. 이듬해인 1942년 4월 18일, 도쿄·나고야·고베 등이 처음으로 공습을 받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옥음방송. 거꾸로 계산하면 일본은 약 3년 4개월 동안 공습을 견뎠습니다.
이탈리아 본토에 대한 공습은 이보다 일찍 시작됐습니다. 1940년 6월 이탈리아가 참전한 직후부터 토리노와 제노바 같은 북부 이탈리아의 공업 도시들이 거듭 공격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수도 로마에 대한 공습은 상당히 늦었습니다. 1943년 7월 19일, 처음으로 로마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7월 19일 로마 공습은 이탈리아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라고 이노우에 씨는 말했습니다.
이 공습을 계기로 이탈리아는 전쟁을 계속하려는 뜻을 접게 됩니다.
6일 뒤인 7월 25일,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베니토 무솔리니 총리를 해임하고 체포했습니다.
이노우에 씨가 주목하는 점은 왜 첫 공습 직후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로마는 기원전부터 이어져 온 도시입니다. 5만 명을 수용하는 콜로세움은 서기 70년에서 80년 무렵에 지어졌고,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명건축물도 늘어서 있으며,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도 있습니다. 이 건축물들이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로마에 폭탄이 떨어지면 불길이 바티칸 궁전까지 번질 수도 있었습니다. 가톨릭의 총본산이 불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노우에 씨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면 제게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저 짐작으로 하는 말입니다」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이어갔습니다.
「유적과 바티칸 궁전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참모본부는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축 문화가 전쟁을 계속하려는 의지에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건축이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된 것입니다.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일본으로 돌아옵니다.
「대일본제국은 첫 공습부터 3년 4개월을 버텼습니다. 당시 육해군에는 지켜야 할 건축물이 하나도 없었던 겁니다. 도시가 불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초토화 작전까지 생각한 군인도 있었으니까요」
「한때 건축가를 꿈꿨던 저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파리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습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서쪽으로 공세를 시작했고, 6월 14일 파리에 입성했습니다. 파리는 싸우지 않고 내주었습니다. 루브르 미술관의 미술품은 전해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다고 하지만, 루브르 궁전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옮길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그런 파리가 포화에 휩싸이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이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된 것입니다」

건축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가 건축가를 키운다는 역설
강연을 마무리하며 이노우에 씨는 하나의 역설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는 세계에서 활약하는 건축가가 많습니다. 안도 다다오 씨를 비롯해 그 전후로 이름을 꼽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건축가들은 왜 세계에서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을까요?
「피렌체나 베네치아에도 건축가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건축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일이 없으니 슈퍼카나 배 디자인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멋진 배나 자동차 디자이너는 대체로 건축가입니다」
반면 일본에는 적어도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비교하면 일할 기회가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철거와 신축을 반복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건축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일본의 풍토가 철거와 신축을 낳고, 그 상황을 자양분 삼아 건축가들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건축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있기에 건축가가 성장합니다. 이 역설을 마지막 이야기로 삼아 오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슬라이드도 배포 자료도 없이 약 90분간 진행된 강연에서 이노우에 씨는 “이건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증거는 없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전제하면서, 일본의 거리 풍경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행정기관의 난간 이야기부터 전시 로마 이야기까지 오가며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예를 들어 미관 지구 안의 구라시키강에 산책로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면, ‘난간’은 분명 설치되겠지, 아니 애초에 그런 이야기는 ‘허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관 지구는 건축 문화를 존중한 결과 거리 풍경이 보존되었고, 이후에 지어진 건축물도 ‘조화’를 중시합니다.
건축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일본의 풍토에 대해 구라시키에서 생각해 볼 의미가 있는 강연회였습니다.
제70회 오하라 마고사부로·소이치로 기념 강연회 기본 정보

| 이름 | 제70회 오하라 마고사부로·소이치로 기념 강연회 |
|---|---|
| 개최일 | 2026년 7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8시(오후 6시 개장) |
| 장소 | 구라시키시 혼마치 2-21 구라시키 공민관 대홀 |
| 참가 비용(세금 포함) | 무료 |
| 홈페이지 | 공익재단법인 유린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