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축구 선수 모리시타 진도 ~ 구라시키에서 아프리카로. 도전을 이어가는 가나 최초의 일본인 선수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

구라시키와 아프리카. 언어와 문화, 생활 방식이 크게 다른 지역이지만, 구라시키에서 태어나 자라 아프리카에서 계속 도전하는 프로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모리시타 진도 씨는 구라시키시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잠비아와 가나 등 아프리카 리그에서 프로 계약을 맺은 축구 선수입니다.

가나 최초의 일본인 축구 선수로 활약하며 현지인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구라시키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인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모리시타 씨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기재된 내용은 2024년 5월 기사 게재 당시의 정보입니다. 현재 정보와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모리시타 진도 씨 소개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모리시타 진도 씨는 아프리카 프로 축구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입니다. (2024년 4월 현재 28세)

1995년 구라시키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네덜란드에서 축구를 접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JFE 구라시키 FC(현: 피나클 구라시키 FC), 하자스 풋볼 아카데미, 오카야마 현립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강해, 고등학교 시절에는 1년간 휴학하고 인도네시아 축구 유학에 도전할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축구 명문 쓰쿠바대학교에 진학해 재학 중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프로 데뷔를 했습니다. 이후 가나로 이적해 가나 최초의 일본인 선수로 2년간 리그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그의 활동은 일본 안팎의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리시타 씨는 축구 선수로서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국제 지원으로 이어지는 활동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 현지 서포터 고용을 창출한 가나의 ‘툭툭 사업’
  • 가나 축구 아카데미(NGO)에서 ‘축구 지도와 생활 기술 습득, 젠더 문제, 진로 형성 지도’
  • 구단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일본 기업 스폰서 유치’
  • 일본 기업과 우수한 아프리카 학생을 연결하는 ‘인턴십 제공’
  • 온라인 영어 회화 서비스 ‘EvolvEng’ 운영

가나에 고향 구라시키의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고, 모교인 오카야마 현립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나로 안내하는 등, 일본과 아프리카, 나아가 구라시키와 아프리카를 잇는 활동도 해 왔습니다.

2024년 4월 현재 부상 재활을 위해 잠시 귀국해 있지만, 앞으로도 아프리카를 무대로 축구에 계속 도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축구에만 전념하며 달려온 모리시타 씨가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돌아보겠습니다.

축구와의 만남

처음 축구를 접했던 당시의 만남을 돌아봅니다.

취재에 응하는 모리시타 진도 씨
취재에 응하는 모리시타 진도 씨

네덜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

모리시타 씨가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네덜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있습니다.

5살 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고향 구라시키를 떠나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국제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프로 축구 선수 오노 신지가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체격이 좋은 네덜란드 선수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기술로 서포터들을 매료시키는 오노 선수에게 모리시타 씨는 동경심을 품었습니다. 오노 선수의 활약이 모리시타 씨가 축구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주 초기에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축구를 통해 친구들과 교류할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영어보다 축구 실력이 더 빠르게 늘어, 선배들에게도 인정받는 존재가 될 정도였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공을 차는 모리시타 씨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네덜란드에서 공을 차는 모리시타 씨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학교에서만 공을 찬 것은 아닙니다. 클럽팀에도 소속되어 네덜란드에서 축구에 푹 빠진 나날을 보냈습니다.

귀국 후 괴롭힘을 이겨 내게 해 준 클럽팀

11살 때 네덜란드에서 구라시키로 돌아온 모리시타 씨는 현지 초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괴롭힘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영어를 같은 반 친구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심한 괴롭힘을 겪었습니다.

힘든 환경 속에서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클럽팀이었습니다.

모리시타 씨가 구라시키에서 소속된 JFE 구라시키 FC(현: 피나클 구라시키 FC)는 당시 오카야마현에서도 손꼽히는 강팀이었습니다. 혹독한 훈련이 힘들기도 했지만, 클럽팀 동료들과 함께하는 축구가 모리시타 씨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당시 JFE 구라시키 FC 동료들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당시 JFE 구라시키 FC 동료들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JFE 구라시키 FC 소속으로 현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하면서, 막연히 품고 있던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현실적인 목표로 바뀌어 갔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실적을 쌓은 고등학교 시절

프로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진 모리시타 씨는 중학교에서도 강팀인 하자스 클럽팀에 소속되어 현 선발 선수로 뽑혔습니다.

14살 때 어머니의 조언으로 여러 프로 축구 선수를 배출한 쓰쿠바대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쓰쿠바대학교 진학을 위해 오카야마 현립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축구부에서 겪은 딜레마와의 싸움

모리시타 씨는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에 진학해 축구부에 들어갔습니다.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 축구부는 당시 오카야마현 베스트 4에 든 실적이 있었고, 모리시타 씨는 입학 전부터 부내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모리시타 씨가 입부할 무렵, 팀을 베스트 4로 이끈 당시 고문과 부원들이 세대교체로 떠나면서 원하는 대로 훈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예전 클럽팀 동기들은 다른 팀에서 활약하고 있어 모리시타 씨는 초조함을 느꼈습니다.

마음껏 뛰지 못하는 환경에 아쉬움을 느낀 그는 당시 인도네시아에 단신 부임 중이던 아버지에게 현지 축구 사정을 물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축구가 매우 성행하고 국민적인 인기 스포츠로 사랑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리시타 씨는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 갔습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 공부와 마지막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는 점 등을 생각하면 일본을 떠나는 것은 고민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진로 상담을 해 주던 은사의 “망설이고 있다면 꼭 가야 한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인도네시아에서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새로운 도전

인도네시아에서는 먼저 현지에 주재하는 일본인들의 아마추어 축구 모임에 함께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참가하던 중, 연습 경기를 치르러 간 곳에서 인도네시아에서 활약하는 프로 선수를 만났습니다. 모리시타 씨가 소속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선수는 자신이 소속된 프로팀 감독에게 모리시타 씨를 소개했습니다. 덕분에 현지 아카데미 유소년팀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카르타 국제학교의 강팀 축구부 감독에게 스카우트된 모리시타 씨는 낮에는 공부하고 방과 후에는 선발팀에서 훈련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체류 기간 중 마지막으로 열린 동남아시아 축구 대회에 출전해 모리시타 씨의 팀은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득점 순위에서 모리시타 씨 개인이 3위 안에 들었고, 대회 우수 선수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도네시아 선발팀 후보로도 거론될 정도였습니다.

동남아시아 축구 대회에서 활약하는 모리시타 씨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동남아시아 축구 대회에서 활약하는 모리시타 씨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축구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곳에서 결과를 내다 보니, 만남과 인연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축구를 통해 미지의 장소를 개척했던 당시의 경험이 훗날 아프리카에서 거둔 성공으로도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회상합니다.

공부와 축구를 병행한 입시 기간

귀국하자마자 수험생이 되었지만, 담임 선생님에게 “절대로 축구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전하고 졸업할 때까지 축구부를 그만두지 않은 채 훈련을 이어 갔습니다.

하지만 고문 선생님의 조언도 있어 여름 두 달 동안만 축구를 쉬고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두 달이었고, 그 결과 편차치는 약 20점 올랐으며 모의고사에서도 A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체육 전문학군의 학력 시험을 준비하는 데 힘을 쏟고 있었지만, 담임 선생님이 국제종합학류 추천 입시를 제안했습니다. 추천 입시로 응시해 무사히 합격했고, 쓰쿠바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추천 입시를 위해 국제종합학류를 선택했지만, 나중에 이 선택 덕분에 아프리카에 도전할 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취재에 응하는 모리시타 진도 씨

대학 시절

쓰쿠바대학교에 진학해 축구부에 들어간 모리시타 씨는 재학 중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프로 데뷔를 했습니다.

6군에서 시작

쓰쿠바대학교 축구부는 1896년(메이지 29년)에 창설된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클럽입니다. 수많은 축구 선수를 배출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뛰어난 축구 선수들이 모여듭니다.

부원 수도 많아 부내에서는 1군부터 7군까지 실력별로 팀을 나눴으며, 감독에게 직접 축구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팀은 최상위 1군뿐이었습니다.

입부 희망자는 먼저 ‘프레시맨 코스’라고 불리는 2개월간의 임시 입부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프레시맨 코스는 장시간의 혹독한 체력 훈련을 하거나 축구부의 조직 문화를 익히는 등 체력과 정신력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었습니다.

프레시맨 코스를 마친 신입생은 실력에 따라 1군부터 7군까지 배정됩니다. 모리시타 씨는 6군에 배정되었습니다. 상위 팀과의 실력 차이를 실감했지만, 그 분함을 원동력 삼아 훈련을 거듭해 마침내 2군까지 승격했습니다.

쓰쿠바대학교 축구부에서 활약하는 모습©︎M.Naito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쓰쿠바대학교 축구부에서 활약하는 모습©︎M.Naito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프로의 꿈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해 프로가 되기 위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구단의 제안을 받는 것 외에 프로가 되는 방법으로는 트라이아웃이라는 테스트에 참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트라이아웃에서는 훈련이나 경기에 참가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프로팀의 제안을 노립니다.

하지만 트라이아웃에는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선수들이 모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띌 필요가 있었습니다.
모리시타 씨는 축구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실력을 쌓은 뒤 귀국해 일본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도전을 결심한 대학 4학년

쓰쿠바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모리시타 씨는 국제종합학류에서 체육전문학군으로 전과할지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고이도 마사아키 감독에게 전과를 상담했을 때, “체육 계열 학부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인재보다 국제 계열 학부에서 스포츠도 두루 아는 인재가 장래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더 많으니 전과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이후 국제종합학류에서 만난 친구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축구에 도전한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모리시타 씨는 국제종합학류에 재학하면서 체육전문학군의 국제개발 연구실에도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실 교수의 소개로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열리는 스포츠 국제 학회에 동행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축구 관련 인맥을 만들고 싶었던 모리시타 씨는 교수에게 부탁해 일주일간 잠비아에 동행했습니다. 행사장에서 자신의 축구 경기 영상을 볼 수 있는 QR 코드를 명함 뒷면에 인쇄해 수백 장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 결과 잠비아 대표팀 관계자와 인연이 생겨 잠비아 프로팀의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QR 코드를 인쇄한 명함을 나눠 주자는 아이디어는 국제종합학류 친구들과 나눈 잡담에서 나왔습니다.

축구를 넘어 아프리카에서 펼친 활약

잠비아에서 프로 데뷔를 하고 이후 가나에서 프로 축구 선수로 활약한 모리시타 씨. 활동 무대는 축구에 그치지 않고 국제 지원으로도 넓어졌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프로 데뷔를 한 뒤 지금까지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이문화 속에서 단련된 잠비아 축구

모리시타 씨는 졸업을 앞두고 휴학한 뒤 문부과학성이 운영하는 ‘토비타테! 유학 재팬’ 9기생으로 잠비아에 갔습니다. 현지에서 여러 문화 충격을 겪으면서 프로팀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마침내 염원하던 프로 데뷔를 이뤘습니다.

체격 차이가 큰 아프리카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모습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체격 차이가 큰 아프리카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모습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트라이아웃을 치르는 동안 축구를 통해 인종 차별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트라이아웃을 본 프로팀에서는 최종 심사에서 “아시아인과는 계약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현지 선수들은 축구선수가 되지 못하면 가족도 부양할 수 없게 되니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현지의 그런 사정을 알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프로의 세계이니 해내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다음 트라이아웃에 도전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는 모습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는 모습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처음에는 낯선 나라에서의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도 있었습니다.
호스트 가족과 소통이 잘되지 않았고, 익숙하지 않은 식충 문화 때문에 체중이 10kg이나 줄기도 했지만, 모리시타 씨는 잠비아 문화에 차츰 적응해 갔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만의 컨디션 관리법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문화 충격을 받는 일이 많았던 잠비아 생활이었지만, 새로운 가치관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는’ 역산 사고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쌓아 갈 것인가”라는 가산 사고도 더해졌습니다.

현재 재활 기간에도 “부상을 당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잠비아에서 기른 가산 사고 덕분에 마음을 잘 다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가나에서 팬을 만든 툭툭 사업

귀국 후 대학을 졸업하고, 염원하던 J리그 데뷔를 목표로 하던 바로 그때, 누나와 갑작스럽게 이별하는 일이 모리시타 씨에게 닥쳤습니다. 누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따른 충격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축구를 할 수 없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강한 응원에 힘입어 축구를 계속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나 팀에서 온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가나 리그 사상 최초의 아시아 선수였기에 현지의 기대가 컸고, 당시 언론의 주목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나에서도 감독에게 인종 차별을 당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외국인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감독을 보며 모리시타 씨는 “나를 응원해 주는 팬을 늘려 외부에서 압박을 가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모리시타 씨가 시작한 것은 툭툭 사업이었습니다. 현지 서포터를 고용하고, 매출을 활용해 어린이를 위한 축구 대회를 여러 차례 열었습니다. 그 결과 툭툭을 이용하는 서포터와 운전기사,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진도를 응원하러 가자”며 경기를 보러 오게 됐습니다.

가나에서 시작한 툭툭 사업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가나에서 시작한 툭툭 사업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모리시타 씨가 출전하지 않으면 감독에게 화를 내는 서포터도 있었습니다.

출전 시간이 5분, 10분으로 늘어났고, 마침내 풀타임 출전도 이뤄 냈습니다. 재임 중 맨 오브 더 매치라 불리는 최우수 선수상까지 받을 만큼 활약하며 가나 리그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 모리시타 씨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 모리시타 씨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큰 부상을 극복하고 모로코로

가나에서 두 차례 프로 계약을 맺은 뒤, 다음으로 목표한 무대는 모로코였습니다. 모로코는 2022년 FIFA 월드컵에서 4위에 오른 전적이 있으며, 현재 아프리카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나라라고 모리시타 씨는 말합니다.

직접 구단을 찾아다닌 끝에 계약해 줄 팀을 만났습니다. 한층 수준 높은 환경에서 뛸 수 있다는 기쁨을 안고 훈련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귀국 중 훈련을 하다가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완치까지 10개월이 걸리는 부상은 선수 생활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모로코 이적도 위태로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때 모로코에 지사를 둔 일본 기업에서 “스폰서가 될 테니 팀과 다시 협상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활약하는 모리시타 씨의 존재를 알게 된 쓰쿠바대학교 동문이 연락해 온 것입니다. 과거의 노력이 이어 준 인연을 되새기며 모로코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가나에서 개최한 축구 대회에서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가나에서 개최한 축구 대회에서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고향 구라시키에서 계속 이어지는 인연

모리시타 씨는 프로 선수로 활약할 뿐 아니라 축구를 통해 다양한 사업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일본에서 활동하는 모리시타 씨의 구라시키 관련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가나 최초의 일본 기업 스폰서, 아일 엔지니어링과의 만남

스포츠 선수에게 꼭 필요한 스폰서 기업.
모리시타 씨의 활동을 지원하는 스폰서 중에는 가나에서 만난 구라시키 기업도 있었습니다.

아일 엔지니어링과 기념 촬영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아일 엔지니어링과 기념 촬영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아일 엔지니어링 주식회사는 구라시키시 간다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입니다. 유일한 해외 지사가 가나에 있어 모리시타 씨는 우연히 만난 현지 주재원과 고향 구라시키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사장과도 인연이 닿아 개인 스폰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가나에서 활동한 지 2년째에 팀을 옮겼을 때는 “구라시키 출신 축구선수를 더 응원하고 싶다”며 팀 스폰서도 맡아 가나 최초의 일본 기업 스폰서로 화제가 됐습니다.

팀 스폰서가 된 아일 엔지니어링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팀 스폰서가 된 아일 엔지니어링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구라시키의 인연이 가나에서 이어진 운명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모교와 협업해 가나 현지 시찰 진행

2023년 겨울, 모교인 오카야마 현립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 축구부 학생들과 함께 가나의 문화와 축구 사정을 배우는 시찰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가나를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어에 앞서 워크숍도 열었습니다. 스폰서인 플레이 스포츠와 협력해 재활용 스포츠용품을 모았습니다. 오카야마 현립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이 스포츠용품을 어떻게 현지에 전달해야 이상적인 국제 협력으로 이어질까”를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총 4회에 걸친 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은 ‘축구 대회를 열고 경품으로 스포츠용품을 선물한다’는 기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현지에서 축구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오카야마 현립 구라시키 세이료 고등학교에서도 비품을 기부했고, J리거 나카노 세이야 선수와 코미디언 지하라 세이지 씨도 스폰서로 협력해 주었다고 합니다.

개최한 축구 대회의 모습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개최한 축구 대회의 모습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현지 사람들과의 교류도 깊어졌습니다.

고등학생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된 현지 시찰. “아프리카와 구라시키시의 학교를 연결해 교육의 장을 넓히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활동을 이어 가고자 노력 중입니다.

“구라시키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구라시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세계에서 활약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아프리카에서 얻은 경험을 구라시키에 환원하고 싶습니다. 구라시키 출신의 젊은이가 악착같이 아프리카에서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면 기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모리시타 씨를 취재하면서 미지의 환경에도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꿈과 목표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뤄 내는 실행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축구 인생을 개척해 온 모리시타 씨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모리시타 씨는 앞으로도 아프리카에서 계속 도전하겠지만, 구라시키와 아프리카를 잇는 다리 같은 존재로 활약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라시키시 출신의 젊은이가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알고, 고향 팬이 더욱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가나 동료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가나 동료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사진 제공: 모리시타 진도 씨

취재 협력: 산큐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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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쓴 시민 작가
이와사 리쓰코
이와사 리쓰코

오랫동안 살던 가나가와를 떠나 2023년 12월 지역 활성화 협력대로 구라시키에 이주했습니다.

인연도 연고도 없던 구라시키는 보는 것, 만나는 것 모두 처음 접하는 것투성이입니다! 매일의 생활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주자의 시선을 잊지 않고 구라시키의 매력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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