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 미관 지구 중심부, 혼마치도리에 있는 ‘구라시키 공민관’입니다.
공민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지역 주민들이 모임 등에 이용하는 공공시설입니다.
관광지로도 유명한 미관 지구 중심부에 공민관이 있다니
놀라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도 시대의 오래된 거리 풍경과 쇼와 시대의 비교적 새로운 건물이 ‘조화’를 이룬 좋은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것은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을이 죽습니다. 그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계속 더해야 생기 있는 마을이 됩니다.
오늘날 미관 지구의 토대를 닦은 오하라 소이치로의 말입니다. 구라시키 공민관의 전신인 구라시키 문화센터는 1969년(쇼와 44년)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신축되었습니다.
준공 당시에는 시립 도서관이 인접해 있어 ‘구라시키 문화센터’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1983년에 도서관이 현재 위치인 구라시키시 주오 2초메로 이전했습니다. 이후 ‘구라시키 공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건축물로서의 ‘구라시키 공민관’을 살펴봅니다.
기재된 내용은 2022년 3월 기사 게재 당시의 정보입니다. 현재 정보와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구라시키 공민관이란

구라시키 공민관(구: 구라시키 문화센터)은 1969년(쇼와 44년) 10월 3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건설의 계기는 1953년(쇼와 28년)에 오하라 소이치로가 음악 도서실 건립을 위해 구라시키시에 1,000만 엔을 기부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설계를 맡은 구라시키 출신 건축가 우라베 시즈타로는 건설에 참여한 오하라 소이치로에게 다음과 같은 구상을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 ‘오노 가문의 3층 창고’ 같은 디자인으로 해 달라
- ‘음악 도서관’을 넣으면 어떨까
‘오노 가문의 3층 창고’란 구라시키 공민관 부지에 있던 오노 가문의 창고를 말합니다.
구라시키 우체국 전화 분실 부지로 내놓으라는 권유를 받아 1935년(쇼와 10년)에 오노 가문이 이사하고 3층 창고만 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950년(쇼와 25년)에 완공된 구라시키 우체국이 들어서면서 철거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문헌: 그림 지도로 걷는 구라시키 컴팩트판
외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완만한 경사의 널찍한 ‘큰 지붕’은 이러한 요청에 부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1969년 개관과 동시에 음악 도서실도 문을 열었습니다.

구라시키의 마을과 클래식 음악을 더없이 사랑한 오하라 소이치로의 뜻이 강하게 반영되었지만, 그는 이 건물과 음악 도서실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6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완공 당시에는 미관 지구에서 새로운 건물이었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맞은편에 있는 ‘신고지마관(구: 주고쿠은행 구라시키 혼마치 출장소)’과 함께 미관 지구와 조화를 이루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개보수 공사 등 건물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 연도 | 내용 |
|---|---|
| 1969년 | ‘구라시키시 문화센터’로 개관 |
| 1983년 | 1983년에 도서관이 현재 위치인 구라시키시 주오 2초메로 이전해 중앙도서관이 됨. ‘구라시키 공민관’으로 명칭 변경. |
| 1996년 | 1995년부터 개보수 공사를 진행해 1997년 2월 29일 완료 |
| 2017년 | 2016년 12월부터 내진 보강 공사를 진행해 2017년 3월 완료 |
| 2022년 | 2021년 11월부터 대강당 개보수 공사를 진행해 2022년 2월 완료 |
개관 당시부터 공공시설로서의 기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관 지구 중심부에 있는 근대 건축

구라시키 공민관은 오하라 미술관 등이 있는 구라시키강변 북쪽, 혼마치도리에 면해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봇대를 지중화하고, 전통 가옥을 개조한 카페 등 새로운 가게가 여럿 문을 열어 거리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길입니다.
즉, ‘관광지 한복판’에 있는 셈인데, 그런 곳에 공공시설인 ‘공민관’이 자리한 것은 드문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구라시키다운 모습’을 느낍니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게 함으로써 매력을 더한 곳이 구라시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에도 시대의 창고 저택과 전통 가옥이 남아 있는 구라시키라는 이미지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지만, 어색하지 않습니다.
-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에는 원래 필요하지 않을 법한 ‘구라시키 격자’
- 붙임 기와
- 벽보다 안쪽에 배치한 창문 등
곳곳에서 거리 풍경과 조화를 이루려는 배려가 느껴집니다.


특히 창문이 인상적인데, 밖에서 보면 창문이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깊이감과 음영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고 우라베 시즈타로가 설립한 우라베 설계의 고모토 지로 씨가 말했습니다.
창문을 안쪽에서 보면 ‘튀어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공사에도 손이 더 가고 사용하는 입장에서도 튀어나온 부분이 있으면 불편하지만, 외부 경관을 중시한 결과 이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큰 창고를 연상시키는 ‘큰 지붕’

구라시키 공민관의 외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큰 지붕’이 아닐까요?
예전에 있던 ‘오노 가문의 3층 창고’를 본뜬 큰 지붕은 우라베 시즈타로가 확립한 ‘벽 처마’ 대신 이후 우라베 건축에서 자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메이지 100주년 기념 심벌 마크
구라시키 공민관을 밖에서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심벌 마크가 눈에 띕니다.

이게 뭔지 아시겠어요?
구라시키시나 미관 지구와 관련이 있을 것 같지만, 이것은 ‘메이지 100주년 기념 심벌 마크’입니다.
‘메이지 100주년 기념’ 행사 때 만들어졌으며, 당시에는 자주 볼 수 있는 심벌 마크였다고 합니다.
‘메이지 100주년’은 1968년(쇼와 43년)입니다.
구라시키 공민관은 이듬해인 1969년에 문을 열었고, 설계와 공사가 진행되던 당시 이 마크를 자주 접했기 때문에 우라베 시즈타로가 채택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메이지 100주년 기념 심벌 마크’는 대강당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건물 내부
이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구라시키 공민관은 공공시설이므로 관광객과 시민을 가리지 않고 기본적으로 누구나 들어가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관 공간을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사용 중일 때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1층

로비에는 공민관답게 안내문이 많이 붙어 있지만, 계단과 조명은 고급스러워 공민관답지 않습니다.
바닥에는 오카야마현 내에서 나는 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가사오카 제도의 ‘기타기시마’는 돌의 섬으로 유명하지만, 기타기시마산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문과 서적을 열람할 수 있다(기본적으로 휴관일 외에는 상시 개방되어 있다)




이 쇼지를 보고 안내를 맡아 주신 우라베 설계 관계자분이 “그렇구나~”라며 감탄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바깥쪽 창문 사이를 일부러 넓게 만들어 쇼지의 경계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2층
이어서 2층으로 올라갑니다.
계단 난간도 황동으로 만들어져 있어 시간이 흐르면서 멋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3층
최상층인 3층으로 올라갑니다.

‘그저 계단’이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촬영 각도를 바꿔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멋이 더해지는 듯한 점이 우라베 건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4회의실에 들어가 커튼을 열자 모두가 “오!” 하고 환호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메이지 100년 기념 심벌 마크’입니다. 밖에서 보였던 것이죠.


‘공민관 건물’에 주목해 보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이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세심하게 배려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기사 후반부에서는 관내를 둘러보며 눈길이 갔던 곳과 주목해 주셨으면 하는 곳을 골라 소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