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는 1972년에 창단한 북 연주 그룹입니다. 창단 후 약 50년 동안 구라시키에 북소리를 울려 왔습니다.
야마베 다이시 씨는 사물 분별을 할 무렵부터 북채를 쥐고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의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북소리로 사람들을 매료시킬 뿐 아니라, 북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연출가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2일, 제38회 구라시키 음악제에서 일본 전통 악기 연주자들이 선보이는 소리와 빛의 연출을 결합한 ‘메바에이즈루’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24년 3월 10일에는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 멤버들과 함께 북소리를 울리는 ‘일본 북 콘서트’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북 연주자 야마베 씨가 음악에 쏟는 마음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기재된 내용은 2024년 2월 기사 게재 당시의 정보입니다. 현재 정보와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야마베 다이시 씨와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
구라시키에서 자란 북 연주자 야마베 다이시 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야마베 씨와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를 소개합니다.
북 연주자 야마베 다이시 씨
야마베 다이시 씨는 구라시키시 출신의 북 연주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북 연주를 가까이하며 지냈고,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의 멤버로 활약해 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프로 북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무대 연출과 작곡도 맡으며 해외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일본 전통 악기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음악과 협연도 실현하며 북의 깊은 매력을 알려 왔습니다.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북의 매력을 끌어내는 표현을 더해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야마베 씨는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가 키워 낸 일본을 대표하는 북 연주자입니다.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란?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는 구라시키시에서 1972년에 창단한 북 연주 그룹입니다.
창립자 고야마 히로시 씨는 학창 시절을 도쿄에서 보낸 뒤 고향인 구라시키로 돌아와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를 창단했습니다.
도쿄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활기찬 축제가 열렸지만, 구라시키에는 도쿄처럼 떠들썩한 축제가 없다고 느낀 고야마 씨는 마을을 활기차게 만들 방법으로 북 연주를 떠올렸습니다.
이후 오하라 가문의 창고에 있던 북을 빌려 아치 신사에서 연주를 시작한 것이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의 출발점입니다.
약 50년이 지난 2024년 현재도 구라시키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야마베 씨와 북의 만남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 북이 함께했던 야마베 씨는 북과 어떻게 인연을 맺어 왔을까요?
야마베 씨와 북의 첫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했던 북의 존재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북을 치고 있었다”고 답할 정도로, 야마베 씨에게 북은 일상 속에 늘 있는 존재였습니다.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 멤버로 활동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북과 함께 지낸 야마베 씨는 북을 시작했다는 감각이 없습니다. “북채를 들고 태어났다”고 표현할 만큼 어릴 때부터 북을 쳐 왔습니다.
처음 무대에 선 것은 세 살 무렵입니다. 이후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 멤버로 활약하며 매일 오후 7시에 모여 오후 11시까지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북이 너무나 흔한 존재였던 탓에, 야마베 씨는 누구나 북을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오해했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다른 집에 북이 없는 것은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으니, 물리적으로 북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점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북이라는 개념 자체를 희미하게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은 프로로 활동하게 된 뒤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야마베 씨는 처음 북을 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며 연출과 기획을 구상한다고 말합니다.

북 연주자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고등학생 시절, 야마베 씨는 장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북을 치며 살아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고, 주변 사람들도 야마베 씨가 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악의 길을 선택할 때는 아티스트로 혼자 활동하거나 프로 집단이 활약하는 단체에 들어가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합니다.
야마베 씨는 혼자 활동하는 길을 택했지만 확고한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의식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했던 북이 야마베 씨를 북의 길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이후 구라시키를 거점으로 전국에서 북 연주자로 활동했습니다. 도쿄로 거점을 옮긴 것은 26세 때입니다. 도쿄에서 일이 늘기 시작하면서 한 달의 절반은 구라시키에서, 나머지는 도쿄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연주자 일뿐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무대 연출 작업에도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창작 활동의 거점으로 삼은 도시에 집이 없다는 점이 야마베 씨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큰 짐을 들고 구라시키와 도쿄를 오가다 보니 동료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외지인처럼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도쿄와 구라시키를 오가는 일상에서 느낀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해 야마베 씨는 도쿄로 이주했습니다. 창작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의 세계를 넓히다
독창적인 연출로 북의 매력을 알리는 야마베 씨는 북 이외의 음악을 접하면서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북 연주자에서 연출가로 활약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구라시키의 음악과 도쿄의 음악
도쿄에서 제작 활동을 하며 야마베 씨는 음악 세계의 넓이를 알게 됐습니다.
구라시키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북과 관련된 음악만 바라봤습니다. 북을 중심으로 샤미센이나 샤쿠하치 등 일본 전통 악기 연주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북을 비롯한 일본 전통 악기 분야에서만 매력을 전해도 일이 성립했습니다.
반면 도쿄에서 요구된 것은 더 폭넓은 음악이었습니다. 클래식과 재즈 등 다른 장르에서도 북의 매력을 전해야 했습니다.
북만 연주해서는 북의 매력을 알아봐 주지 않습니다. 다른 음악 세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북 연주를 녹여 내면서 북의 매력을 전하는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야마베 씨는 “북의 세계에서 연주를 잘하는 것과 음악의 세계에서 연주를 잘하는 것은 다릅니다”라고 말합니다.
활동 거점을 도쿄로 옮긴 덕분에 북만 치던 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넓은 음악 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술과의 만남과 작품 만들기
야마베 씨가 북 이외의 세계로 시야를 넓힌 계기는 유명 연예 기획사 관계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일류 예술을 접하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구라시키에서 생활하던 시절에는 북 이외의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춤과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고 회화와 조각 등을 전시한 미술관을 둘러보게 됐습니다.
다양한 예술을 접하는 가운데 특히 야마베 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컨템퍼러리 댄스였습니다.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매료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화와 조각 등 예술의 형태와 관계없이 어떤 작품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야마베 씨가 좋아한다고 분명히 느낀 미술가는 리우환이었습니다. 마음이 끌리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기 이해가 깊어졌고, 예술을 접하는 습관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습니다.
여러 예술을 접하며 높아진 야마베 씨의 감성은 점차 북을 연주할 때의 연출로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북 연주자이자 연출가
야마베 씨의 감성을 사로잡은 것과 북 연주를 결합해 연출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30세 때였습니다.
그전에도 연출을 맡은 적은 있었지만, 곡 순서나 조명 배치를 정하는 정도로 북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연출이었습니다.
예술 세계에서 접한 좋아하는 것들과 북 연주가 자연스럽게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연출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고 야마베 씨는 말합니다.
예술을 통해 높아진 감성을 표현한 북 연주 중 하나가 2024년 3월 2일에 예정된 ‘메바에이즈루’입니다. 레이저를 활용한 빛의 연출로 북의 새로운 매력을 끌어냅니다.
도쿄에서 열린 프로젝션 매핑 세계 대회에 갔을 때 본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북 연주에 빛의 연출을 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고향 구라시키와 북의 미래
북 연주자로서도 연출가로서도 변화를 거듭해 온 야마베 씨. 고향 구라시키를 향한 마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와 구라시키를 향한 마음을 깊이 살펴봅니다.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가 나아갈 길
야마베 씨는 예술에 영향을 받으며 북 연주자로서 지금까지 없었던 무대 연출을 선보여 왔습니다.
또한 약 50년의 역사를 지닌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에도 변화를 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야마베 씨는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이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구라시키에서 북소리가 계속 울려 퍼질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를 지키는 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구라시키 바깥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야마베 씨의 북 연주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구라시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구라시키 덴료 다이코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야마베 씨의 변화와 변함없는 구라시키
도쿄로 활동 거점을 옮긴 뒤, 야마베 씨가 구라시키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졌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늘 곁에 있던 미관 지구와 세토 내해의 풍경을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심의 빌딩이 늘어선 환경에서 지내면서, 역사 깊은 거리와 세토 내해의 잔잔한 파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야마베 씨는 어릴 때부터 구라시키가 문화의 도시라는 말을 들었지만, 구라시키를 떠나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으로 활약하면서, 야마베 씨는 구라시키가 특별한 곳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거리 안에 미술관과 음악홀이 있고, 문화와 예술이 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귀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024년 3월에 예정된 ‘메바에 이즈루’와 ‘일본의 북 콘서트’는 금의환향 공연입니다. 야마베 씨가 구라시키를 떠난 뒤 보아 온 것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라시키에서 자랐기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라고 야마베 씨는 말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필자는 야마베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른 글이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그 물은 예전의 물이 아니다」. 고전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필 「호조키」의 첫 문장입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원래 있던 물은 흘러가 사라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강이 아름다운 모습을 이어 가려면 신선한 물이 끊임없이 순환해야 합니다. 강이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지만, 강을 이루는 물은 늘 변한다는 신기한 상황이 아름다움의 비결입니다.
야마베 씨는 북의 매력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표현을 북의 세계에 도입해 왔습니다.
어쩌면 야마베 씨에게 북은 강이고, 표현은 물인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북 연주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물의 흐름 같은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