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관련 기업이 모여 있는 고지마는 구라시키를 대표하는 ‘섬유의 도시’

‘섬유의 도시’로 국내외 팬들을 매료시키는 고지마.
고지마에서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섬유 제품을 기업과 함께 소개합니다.
고지마에서 가장 오래된 좁은 폭의 직물 ‘사나다히모’

고지마의 섬유 제품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은 사나다히모입니다.
사나다히모는 세계에서 가장 폭이 좁은 직물이라고도 불리며, 무거운 것을 매달아도 늘어나지 않는 튼튼함이 특징입니다.
과거에는 무사의 갑옷을 연결하는 방어구나 칼을 매다는 끈, 미끄럼 방지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서민들 사이에서도 다기를 묶는 끈이나 오비 고정 장식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고지마의 사나다히모는 1789년 다노구치촌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사나다히모는 곤피라산과 유가 신사를 함께 참배하는 양참배의 기념품으로 유행하며, 고지마가 직물의 도시로 자리 잡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나다히모 제조업체가 줄어들어, 2025년 현재 고지마 사나다히모를 만드는 곳은 사카모토 오리모노 유한회사(이하 ‘사카모토 오리모노’)뿐입니다.
고지마의 사나다히모도 후계자 부족으로 한때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지만, 사카모토 오리모노의 현 전무이사 사카모토 사나에 씨가 귀중한 기술과 사나다히모를 짜는 데 꼭 필요한 동력 직기를 이어받았습니다.
사카모토 오리모노는 현대의 수요에 맞춰 소량 주문 제작 사나다히모를 만들고, 다채롭고 아름다운 상품을 선보이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진화하는 국내 점유율 1위 ‘다다미 테두리’
사나다히모 같은 좁은 폭의 직물 생산은 고지마에서도 특히 가라코토 지역에서 활발했다고 합니다.
좁은 폭의 직물에는 사나다히모 외에도 다다미 테두리가 있습니다. 다다미 테두리는 다다미 양쪽 끝에 쓰이는 직물로, 다다미를 보호하고 서로 연결해 고정하는 건축 자재입니다.

다다미 테두리 자체는 나라 시대부터 있었지만, 오카야마에서 다다미 테두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 시대입니다. 오카야마산 다다미 테두리는 품질이 좋다는 평판을 얻어 일본 굴지의 다다미 테두리 산지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1892년(메이지 25년)에 창업한 다카타 오리모노 주식회사(이하 ‘다카타 오리모노’)는 2025년 현재도 다다미 테두리의 국내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카타 오리모노는 원래 사나다히모를 만들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쇼와 초기부터 다다미 테두리 제조를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전통문화에서 팝 컬처로’를 기업 비전으로 삼아, 기존의 전통적인 다다미 테두리뿐 아니라 다채롭고 디자인이 돋보이는,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다다미 테두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다다미 가게를 거치지 않고 최종 소비자에게 다다미 테두리를 직접 판매하는 직영점 ‘FLAT’도 문을 열었습니다.
대표이사 다카타 나오시 씨는 “섬유 산업이 활발한 고지마에는 재봉틀을 다루는 사람이 많았던 덕분에 수공예품으로서 다다미 테두리의 가치가 높아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현재는 기업과의 협업, 수공예 워크숍,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다다미 테두리 제작 등도 진행하며 새로운 고객층에 다다미 테두리의 매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수의 다다미 테두리 산지로서 다카타 오리모노는 다다미 테두리의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버선’과 ‘교복’으로 입체물 봉제 기술을 연마하다

다이쇼 시대에는 내륙 지역에서도 버선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지마뿐 아니라 차야마치도 버선 산지로 활약했으며, 발바닥에 고무를 붙인 ‘봉제식 지하 버선’도 개발되었습니다.
지하 버선을 만든 마루고 주식회사는 지금도 차야마치를 거점으로 100년 넘게 버선을 만들어 온 전통 있는 기업입니다.

버선 생산이 시작되면서 많은 섬유 기업이 입체물 봉제 기술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다이쇼 시대는 일본의 옷차림이 일본 전통 의상에서 서양식 의상으로 바뀌던 시기입니다.
학생복을 입는 문화도 일본에 점차 자리 잡았습니다. 학생복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비 생산으로 쌓아 온 입체 재봉 기술이 한꺼번에 꽃을 피웠습니다.
학생복 붐을 사업 기회로 여긴 고지마의 섬유 기업 대부분은 학생복 제조로 업종을 전환했습니다.

쇼와 시대에 들어서자 고지마의 학생복 제조업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전국 학생복의 약 90%가 고지마에서 생산됐으며, 연간 생산량은 1000만 벌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산 청바지’ 발상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도쿄 우에노의 아메요코 상점가에서 열리던 암시장을 계기로 미국산 중고 청바지가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고지마에서 학생복을 만들던 마루오 히후쿠(현 빅존 주식회사. 이하 ‘빅존’)의 영업사원이 암시장에서 유통되던 청바지를 발견했습니다.
빅존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청바지 제조·판매에 나서면서 고지마는 ‘국산 청바지 발상지’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때까지 학생복을 만들던 기업들이 청바지를 만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데님은 원단이 두꺼워 학생복을 만들 때 쓰던 재봉틀로는 바늘이 통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지마 사람들은 재봉틀을 개량하는 일부터 청바지 만들기를 시작해 일본을 대표하는 청바지 산지로 키워 냈습니다.

또한 청바지 산업이 성장하면서 재봉틀 가게와 단추 전문점, 지퍼 전문점 등의 사업자도 고지마에 늘어났습니다.
1970년에는 베티 스미스가 일본 최초의 여성용 청바지 브랜드로 출범해 여성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청바지의 제조·판매에 도전했습니다.
2025년 현재 베티 스미스는 청바지 제조뿐 아니라 청바지 박물관을 개관해 지역 초등학교의 사회과 견학에 기여하고, 청바지 만들기 체험을 통해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안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청바지의 매력을 알리고 있습니다.
섬유 업계를 이끌 인재 육성에도 힘쓰고 있으며, 베티 스미스에는 섬유 마이스터 자격을 보유한 장인이 다수 재직하고 있습니다.

고지마가 섬유 도시로 계속 빛날 수 있도록 베티 스미스는 앞으로도 청바지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이처럼 고지마에서는 수많은 섬유 기업이 다양한 섬유 제품의 전통문화와 기술을 계승해 다음 세대로 이어 가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