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류지 ~ 막부 말기 격동의 상흔을 오늘날까지 간직한 절

간류지

구라시키 미관 지구 북쪽에 우뚝 솟은 작은 언덕은 쓰루가타산입니다.

쓰루가타산 위에는 아치 신사와 간류지라는 절이 있습니다.

사실 간류지에는 일본 역사가 크게 요동친 막부 말기 혼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구라시키에서도 벌어진 막부 말기 혼란과 관련된 명소, 간류지를 소개합니다.

기재된 내용은 2022년 10월 기사 게재 당시의 정보입니다. 현재 정보와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간류지란

간류지 참배길

간류지는 미관 지구 북쪽에 우뚝 솟은 쓰루가타산 위에 있습니다.

쓰루가타산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쓰루가타산 터널’의 왼쪽(서쪽)에 있는 돌계단이 참배길입니다.

간류지의 산호는 ‘호주산’, 종파는 진언종 오무로파입니다.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대일여래는 ‘우주의 진리 그 자체’를 나타내는 부처로, 일본 밀교에서 중요한 부처입니다.

간류지 산문 사호표

헤이안 시대인 간와 원년(985년), 현재 구라시키시 북부 니시오카 지역에 간류지가 세워졌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 구라시키촌(현재 미관 지구 주변)으로 이전했습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구라시키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절입니다.

간류지의 볼거리

간류지 경내

간류지는 경내가 넓습니다.

그중에서도 볼거리를 엄선해 소개합니다.

산문이 열려 있다면 경내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당 등 건물 안에는 보통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산문과 창 자국

간류지 산문

먼저 돌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산문입니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이 산문은 에도 시대 메이와 5년(1768년)에 세워진 매우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산문 정면의 큰 입구 양쪽에는 작은 문이 있습니다.

그중 왼쪽 작은 문 위의 인방 부분이 볼거리입니다.

모델: 아모 리루, 촬영: 오타케 류이치
모델: 아모 리루, 촬영: 오타케 류이치

왼쪽 작은 문의 인방에 상처 자국이 있습니다.

사실 이 상처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흔적입니다.

간류지 산문 구라시키 아사오 소동 당시 창 자국

에도 시대 말기에 습격 부대가 구라시키 대관소를 습격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구라시키 아사오 소동’이라고 불립니다.

구라시키 대관소를 습격한 뒤, 습격 부대는 간류지 경내에 틀어박혔습니다.

이때 대원들이 창으로 산문에 상처를 낸 흔적입니다.

간류지 산문 구라시키 아사오 소동 당시 창 자국

막부 말기의 일본은 막부 타도파와 막부 지지파가 다투던 시대였습니다.

간류지 산문의 상처는 당시의 다툼을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구라시키 아사오 소동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합니다

산문 앞에서 참배길을 돌아보면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산문 앞에서 참배길을 돌아보면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묘켄도

간류지 묘켄도(묘켄구)

산문을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묘켄도입니다.

묘켄구라고도 불립니다.

안에는 북이 봉납되어 있다고 합니다.

묘켄도의 본전
묘켄도의 본전

아치 신사는 메이지 2년 이전에는 ‘묘켄구’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간류지는 묘켄구의 벳토지(신사를 관리하는 절)였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2년 ‘신불분리령’에 따라 묘켄구의 신체 등이 간류지의 당우로 옮겨졌습니다.

묘켄도 앞에는 도리이가 있다
묘켄도 앞에는 도리이가 있다

그 후 메이지 41년, 오하라 마고사부로의 아버지인 오하라 고시로가 묘켄도를 세워 지금에 이릅니다.

도리이가 있는 것은 간류지가 묘켄구를 관리하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시도

간류지 다이시도

경내 거의 중앙에 있는 것이 다이시도입니다.

다이시도는 ‘다이시’라는 칭호를 받은 고보대사(구카이)를 모시는 당입니다.

다이시라는 칭호는 고결한 승려에게만 주어지는 존칭이었습니다.

간류지는 에도 시대에 두 차례 화재를 입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다이시도는 화재 이후인 교와 연간(1801~1804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본당

간류지: 본당

본당은 경내 서쪽, 산문에서 가장 안쪽에 있습니다.

간류지 본당은 에도 시대에 두 차례 화재를 입어 소실되었습니다.

간류지: 본당

현재 남아 있는 본당은 약 270년 전인 1749년에 재건된 건물입니다.

따라서 간류지 본당은 미관 지구에 남아 있는 건축물 가운데서도 상당히 오래된 건물입니다.

간류지: 본당

본당에는 대일여래가 모셔져 있습니다.

시주함이 있으니 시주를 하고 두 손을 모아 정성껏 참배해 보세요.

참고로 본당 안에는 보통 들어갈 수 없습니다.

종루

간류지 종루

경내 중앙 남쪽, 산문을 지나 왼쪽에 보이는 것이 종루(종을 둔 누각)입니다.

종루는 범종이라는 종을 둔 건물로, 사찰을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재 간류지의 범종은 쇼와 말기에 다시 주조한 것입니다.

종루 앞 센쇼안에서 바라본 풍경

간류지 종루 앞에 있는 센쇼안

종루 앞에는 센쇼안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센쇼안 앞은 전망대처럼 되어 있어 미관 지구의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센쇼안 앞은 전망대처럼 되어 있어 미관 지구의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구라시키 미관 지구의 전망 명소로 인기가 있으며, 사진 촬영 장소 중 하나입니다.

경내 동쪽의 ‘쓰루가타산 종루’

간류지 경내 동쪽의 종루

간류지 경내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경내 바로 동쪽 바깥에 커다란 종루가 보입니다.

이 종루는 간류지 경내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쓰루가타산 종루’라고 불립니다.

쓰루가타산 종루는 간류지 산문 앞에서 동쪽(정면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나옵니다.

간류지 경내 동쪽의 종루

이 종루는 에도 시대 중기인 1742년에 구라시키촌의 촌장 오노 씨가 세웠습니다.

구라시키촌과 구라시키 마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 주민들이 교대로 종을 쳤으며, ‘시간의 종’이라고 불렸습니다.

전쟁 중에는 각지의 종이 모두 공출되어 당시의 종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의 종루는 1949년에 오하라 소이치로 씨가 재건해 옛 구라시키시에 기증한 것입니다.

종을 다시 주조할 때 판화가 무나카타 시코가 범종의 무늬를 디자인했습니다.

시간의 종을 치는 일도 중단되었지만, 1977년 구라시키 라이온스 클럽이 자동 타종기를 구라시키시에 기증하면서 시간의 종이 부활했습니다.

참고로 쓰루가타산 종루 안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간류지 고슈인

간류지 고슈인에는 본존인 대일여래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다
간류지 고슈인에는 본존인 대일여래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습니다

간류지에서는 고슈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슈인을 받을 때는 납경료 300엔을 내세요.

참고로 상황에 따라 고슈인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류지의 역사

처음에는 현재 구라시키시 북부에 있었다

간류지는 헤이안 시대 전기인 985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세워진 곳은 현재 위치가 아니라 구보야군의 고이노쇼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고이노쇼는 현재 구라시키시 북부의 니시오카 지구 일대에 해당합니다.

당시에는 간류지가 아니라 호샤쿠인이라는 이름이었으며, 산호는 호쿠토산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이안지 지쇼인이라는 절이 있었고, 사이안지의 말사(큰 절에 속한 작은 절)인 12개 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참고로 헤이안 시대에 사이안지의 말사였던 12개 절 가운데 교간인(옛 자이젠인)과 류쇼인, 두 절은 지금도 니시오카 지구에 남아 있습니다.

덧붙여 사이안지는 나라 시대에 간진이 창건했다고도 전해집니다.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 현재 위치로 이전

무로마치 시대 말기인 1500년대 전반, 호샤쿠인은 고이노쇼에서 현재의 쓰루가타산 남쪽으로 이전했습니다.

이전한 곳은 현재 간류지 돌계단 입구 부근으로, 간류지 참배객 주차장이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간류지 참배객 주차장
간류지 참배객 주차장

간류지가 구라시키시 니시오카에 있었고 호샤쿠인이라 불리던 시절, 호샤쿠인의 수호신으로 묘켄구를 모셨습니다.

묘켄은 북두칠성이나 북극성을 뜻합니다.
즉,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절의 수호신으로 모셨던 것입니다.

또한 묘켄구는 현재 아치 신사의 전신이 되는 신사입니다.

호샤쿠인이 쓰루가타산 남쪽으로 옮겨갈 때 묘켄구도 함께 이전했습니다.

그 후 1594년에 현재 아치 신사가 있는 곳으로 묘켄구를 옮겼습니다.

이 무렵부터 묘켄구는 호샤쿠인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도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에 간류지로 개칭

에도 시대 초인 1624년, 경내를 현재 위치인 쓰루가타산 위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절 이름을 현재의 간류지로 정식 변경하고, 산호는 호주산으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1638년 간류지는 묘켄구의 벳토지(신사를 관리하는 절)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후 에도 시대 중기인 엔쿄 연간(1744~1748년)에 두 차례 화재가 발생해 본당을 비롯한 가람(절 경내의 건축물) 대부분이 불탔습니다.

화재 이후 에도 시대에 걸쳐 차례로 재건되었습니다.

현재 간류지 경내에는 에도 시대에 재건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건축물건축 시기
본당1749년에 재재건
옛 객전1762년에 재건(교와 연간까지 객전으로 사용)
산문1768년
여러 당우안에이 연간(1772~1781년)
대사당교와 연간(1801~1804년)
객전교와 연간(1801~1804년)
현재 경내에 남아 있는 오래된 건축물과 건축 시기

에도 시대의 간류지에서는 문화·분세이 연간(1804~1830년)에 교존과 교카이라는 승려가 활약해 고승으로 불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간류지에는 라이 산요와 간 차잔 같은 문화인들이 방문했습니다.

막부 말기에 구라시키 아사오 소동 발생

막부 말기가 되자 일본 각지에서 막부 타도파와 막부 지지파의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구라시키에서도 막부 말기의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막부 타도파 가운데 다테이시 마고이치로가 이끄는 약 100명의 군대가 게이오 2년(1866년) 4월 10일 아침, 구라시키 대관소(막부의 대관이 업무를 보던 관청, 현재의 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를 습격했습니다.

구라시키 대관은 자리에 없었지만, 안에 있던 남녀 11명이 살해되거나 다쳤습니다.

구라시키는 막부 직할령으로, 막부가 파견한 대관이 다스리는 중요 거점이었기 때문에 막부 타도파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현재 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에 남아 있는 구라시키 대관소 시절의 유구
현재 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에 남아 있는 구라시키 대관소 시절의 유구

구라시키 대관소를 습격한 뒤 군대는 간류지에 들어가 농성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때 대원들이 산문 문지방에 창으로 상처를 냈으며,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 후 같은 날 오후, 군대는 간류지를 떠났습니다.

이틀 뒤인 4월 12일, 군대는 현재 구라시키시 북쪽의 소자시 몬데에 있던 아사오번 진야(번의 관청으로 쓰인 저택)를 불태웠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은 구라시키 아사오 소동이라고 불립니다.

메이지 시대에 아치 신사와 분리

메이지 시대가 되자 신사와 절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1869년에 ‘신불분리’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간류지의 관리 아래 있던 묘켄구가 아치 신사로 분리·독립했습니다.

묘켄구의 신체 등은 간류지로 옮겨졌고, 이후 1908년에 경내에 묘켄당이 세워졌습니다.

쇼와 시대 말기에는 범종을 다시 주조했습니다.

연표

시기사건
나라 시대비추국 구보야군 고이노쇼(현재 구라시키시 니시오카 일대)에 간진이 사이안지를 창건.
985년사이안지의 말사 12곳 가운데 하나로 호쿠토산 호샤쿠인(훗날의 간류지)이 세워짐.
센고쿠 시대(1500년대)호샤쿠인이 현재 쓰루가타산 남쪽 기슭으로 이전.
1624년현재 위치(쓰루가타산 정상)로 이전하고 호주산 간류지로 개칭.
1638년묘켄구(현재 아치 신사)의 벳토지가 됨.
1739년관음당을 세우고 ‘비추 사이고쿠 33관음 영장’의 제29번 영장이 됨.
1744년화재로 가람 대부분이 소실.
1747년건물을 재건했으나 3개월 뒤 다시 화재가 발생해 소실.
1749년본당을 재재건(현재의 본당).
1762년객전을 재건(현재의 옛 객전).
1768년산문을 재건(현재의 산문).
1772~1781년여러 당우를 재건.
1801~1804년대사당을 재건(현재의 대사당). 또한 새 객전을 건설(현재의 객전).
1866년구라시키 아사오 소동이 일어나 습격 부대가 간류지 경내에 들어가 농성.
1869년신불분리로 묘켄구가 아치 신사로 독립.
1908년간류지 경내에 묘켄당을 세움.

구라시키의 역사를 지켜봐 온 간류지.

주지 스님인 무라타 류젠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간류지 기본 정보

간류지: 가람
명칭간류지
별칭호주산
종파진언종 오무로파
소재지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아치 2초메 25-22
연락처086-422-0357
주차장있음
본존대일여래
영험소원 성취, 현세의 평안 등
고슈인(납경료)있음(300엔)
참배 시간낮 시간만
휴관일없음
참배료무료
참배료·납경료 납부 방법
  • 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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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쓴 시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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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노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전문 취재·인터뷰 작가이자 포토라이터입니다. 지역의 문화·지리·역사·음식에 정통합니다. 기업 직원 인터뷰와 사례 소개, 채용 콘텐츠도 제작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산책합니다. 구라시키 관광에 깊이와 풍미를 더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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