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거리 보존의 계기는 민예 운동

구라시키강 주변의 거리 보존은 언제쯤 시작됐을까요?
시부야(경칭 생략)
구체적인 거리 보존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쇼와 40년대(1965년~1974년)부터였습니다. 하지만 그전부터 구라시키의 거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원래 구라시키 지역은 민예 운동이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민예 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구라시키강 주변에 남아 있는 역사적인 거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민예란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실용적인 도구에야말로 아름다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지역의 생활·문화, 풍토와 함께해 온 구라시키강 주변의 역사적인 거리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 아닐까요?
전후에는 문화인들이 구라시키의 거리 보존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라시키 민예관을 설립한 사업가 오하라 소이치로 씨와 구라시키 민예 운동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이었던 염직가 도노무라 기치노스케 씨 등입니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역사적 건축물을 활용한 도시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오하라 씨도 그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구라시키강 주변을 독일의 로텐부르크 같은 지역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거리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합니다.
또 도노무라 씨 등은 ‘구라시키 도시미 협회’를 설립해 구라시키의 거리 보존을 널리 호소했습니다.
쇼와 40년대부터 행정 주도의 거리 보존 활동이 시작되다

본격적인 거리 보존이 시작된 경위를 알고 싶습니다.
시부야
지역 유지들이 거리 보존을 바라는 마음은 이윽고 지역 주민들의 마음도 움직였고,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오하라 씨는 지역의 대지주이기도 해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도노무라 씨 등 문화인들은 민예 사상을 바탕으로 구라시키를 거점 삼아 창작 활동을 펼친, 지역에 뿌리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이들에게 공감했고, 거리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퍼져 나갔습니다. 이윽고 그 목소리가 행정에 전달되어 행정과 주민이 주체가 된 거리 보존 활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일본에 아직 거리 보존 제도가 없던 시절이어서 구라시키시는 자체 조례와 계획을 만들었습니다.
1968년(쇼와 43년), 구라시키시는 구라시키강 주변과 혼마치 등 약 20.7ha를 대상으로 ‘구라시키시 전통 미관 보존 조례’를 공포했습니다. 이듬해인 1969년(쇼와 44년)에는 ‘구라시키시 전통 미관 보존 계획’을 고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구라시키강 주변 미관 지구·구라시키강 주변 특별 미관 지구·구라시키강 주변 보존 기념물이 지정됐습니다. 이 지역을 ‘전통 미관 보존 지구’로 정했습니다.
지구 내에서는 외관을 변경할 때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마련됐습니다. 이것이 구라시키강 주변에서 본격적인 거리 보존 활동이 시작된 계기였습니다.

1975년(쇼와 50년)에는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제도가 출범했습니다. 마침내 국가 제도가 뒤따라온 것입니다.
이에 따라 1978년(쇼와 53년) 구라시키시는 ‘구라시키시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 보존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외관을 변경할 때는 신청해 허가를 받은 뒤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조건을 충족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마련됐습니다.
구라시키시에서는 1979년(쇼와 54년), 시가 지정한 미관 지구 가운데 13.5ha가 국가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로 선정됐습니다(1998년〔헤이세이 10년〕에는 15ha로 확대).
1990년(헤이세이 2년)에는 구라시키강 주변에서 바라보는 경관의 중요성에도 주목해 ‘구라시키시 구라시키강 주변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 배경 보전 조례’를 제정하고 배경 지구의 경관을 보호했습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2000년(헤이세이 12년)에는 건축기준법에 근거한 ‘경관 조례’로, 2005년(헤이세이 17년)에는 경관법에 근거한 ‘구라시키시 미관 지구 경관 조례’로 개정됐습니다.
경관을 지키는 제도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구라시키시는 상황에 맞춰 조례와 제도를 개정하거나 새로 마련하며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라시키시의 노력으로 구라시키강 주변의 거리가 보존·유지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매력을 느껴 찾아오고 있습니다.
구라시키강 주변은 2010년(헤이세이 22년) ‘도시 경관 대상 ‘아름다운 거리 대상’’, 2012년(헤이세이 24년) ‘아시아 도시 경관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2017년(헤이세이 29년)에는 일본유산 ‘한 송이 목화에서 시작되는 구라시키 이야기 ~일본과 서양이 빚어낸 섬유의 도시~’를 구성하는 문화재 중 하나가 됐습니다.
시와 주민이 하나가 되어 오랜 세월 거리 보존에 힘써 온 성과 중 하나가 아닐까요?
구라시키는 거리 보존의 선구적인 지역 중 하나

구라시키강 주변의 거리 보존 활동은 전국적으로도 이른 편이었나요?
시부야
구라시키강 주변의 거리 보존은 전국에서도 이른 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리 보존’이라는 개념입니다. 교토나 나라 등에서는 건축물 하나하나를 보존하려는 활동이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전후 구라시키에서는 개별 건축물이 아니라 ‘건조물군’이라는 거리 전체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획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을 정하고 그 안에 있는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하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점’이 아닌 ‘면’ 단위의 보존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건조물군으로서 보존하는 일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한 곳은 전국적으로 봐도 구라시키와 가나자와(이시카와현) 등 몇몇 지역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구라시키와 가나자와의 거리 보존 활동은 1975년(쇼와 50년)에 만들어진 국가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 제도보다도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구라시키는 거리 보존의 선구적인 지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쇼와 40년대는 마침 고도 경제성장기였습니다. 각지에서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역사적 건축물이 사라져 가던 시기였습니다.
구라시키와 가나자와에 이어 다카야마(기후현)·쓰마고(나가노현)·하기(야마구치현)·마쓰에·쓰와노(모두 시마네현)·교토 등 여러 지역에서 거리 보존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이들 지역은 모두 오늘날 역사적인 거리가 남아 있는 관광지가 되어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구라시키의 거리 보존 활동은 일본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전국적인 움직임에 따라 국가 제도로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가 생겼습니다. 당시 문부성은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를 제정할 때 구라시키·다카야마·하기의 세 지역을 모델 지구로 삼았다고 합니다.
또한 구라시키의 거리 보존은 행정 주도가 아니라 민간에서 거리 보존을 호소해 행정을 움직였다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거리 보존 활동의 자세한 연표는 아래를 참조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