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 병풍 축제 〜 메이지 시대에 사라진 유서 깊은 풍습을 되살려, 구라시키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마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다

구라시키 병풍 축제: 2024년 개최 당시 모습
(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미관 지구에 활기를 되찾고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다

구라시키 병풍 축제: 오카 쇼이치로 씨

병풍을 장식하는 풍습은 메이지 시대 후기에 끊겼지만, 현대에 부활했습니다.

사실 오카 쇼이치로 씨는 병풍 축제 부활에 힘쓴 인물입니다.
부활하게 된 경위에 대해 오카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병풍을 장식하는 풍습은 언제쯤 부활했나요?

오카

부활의 계기는 2001년 오하라 겐이치로 씨가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일이었습니다.

세토 대교가 개통된 쇼와 말기부터 헤이세이 초기(1980년대 후반)에는 구라시키 미관 지구에 관광객이 몰려들어 무척 붐볐습니다. 연간 방문객이 약 520만~54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 후 버블 경제 붕괴 등 사회 상황의 영향도 있어, 2001년 당시 미관 지구를 찾는 사람은 세토 대교 개통 당시의 절반 정도인 연간 약 26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오하라 씨는 역사 깊은 구라시키 미관 지구에 다시 활기를 되찾고 싶어 했습니다. 구라시키는 공업·상업·농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해 있어 관광업이 없어도 마을이 쇠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라시키 미관 지구는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중전건)로 지정된, 역사와 문화가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오하라 씨는 사람들의 왕래와 활기가 사라지면 이런 역사 유산과 문화도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 집객 시설을 만들면 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그래서 오하라 씨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즉 마을에 활기를 불러올 만한 활동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상공회의소 회원 중 몇 명을 오하라 씨가 뽑아, 구라시키 미관 지구를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매달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게 됐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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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타라이자 오하라 혼테이에 전시된 고지마 도라지로의 ‘도테이코’(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2024년 가타라이자 오하라 혼테이에 전시된 고지마 도라지로의 ‘도테이코’(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다른 회원들도 미관 지구의 쇠퇴를 걱정했나요?

오카

저희 지역 주민들은 당시 미관 지구 안쪽까지 가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 차로 이동하다 보니 근처까지 가더라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오하라 씨가 말하기 전까지는 미관 지구의 상황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가 보니 혼마치도리와 히가시마치도리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영업 중인 가게 자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마치야라서 길 쪽은 점포이고 안쪽은 주거 공간입니다. 점포는 문을 닫은 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도 않는 상태였습니다.

안쪽 주거 공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실상을 알게 된 저희는 구라시키 미관 지구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구라시키 모노가타리칸에 전시된 쇼린 게이게쓰의 ‘유산고손도’(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2024년 구라시키 모노가타리칸에 전시된 쇼린 게이게쓰의 ‘유산고손도’(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병풍 축제를 부활시키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요?

오카

회의 중에 나온 한 회원의 말이 계기였습니다.

“가쓰야마(현 마니와시)의 거리 보존 지구에서는 히나마쓰리에 각 마치야가 히나 인형을 장식하는 ‘히나 순례’라는 행사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무척 활기차니 구라시키에서도 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순간 “가쓰야마의 히나 순례는 훌륭하지만, 구라시키에서 하면 아류가 될 테니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럼 아류가 아닌 것은 어떤 게 있나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솔직히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한 말이었기 때문에 되묻는 말에 무척 당황했습니다.

당황한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것은 어떤 책에 적혀 있던 에도 시대의 병풍 장식 풍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도 시대에는 아치 신사 축제 때 마치야에서 병풍을 장식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병풍 축제라는 풍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병풍 축제에 관한 기록은 구라시키 스인쿄 보존회의 책 『스인쿄』에 있었고, 실제로 병풍 축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자 오하라 씨를 비롯한 회원 모두가 “한번 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하라 씨는 저를 병풍 축제 재현 담당자로 지명했습니다.

다만 즉흥적으로 꺼낸 말이었기 때문에 병풍 축제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구라시키 스인쿄 보존회 ~ 에도 시대부터 구라시키의 축제를 지켜 온 ‘스인쿄’를 계승하는 시민 단체
2024년 가타라이자 오하라 혼테이에 전시된 고지마 도라지로의 ‘고큐켄치’(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2024년 가타라이자 오하라 혼테이에 전시된 고지마 도라지로의 ‘고큐켄치’(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애초에 병풍은 지금도 남아 있었나요?

오카

병풍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병풍은 매우 큰 물건입니다. 창고에서 꺼내 처분하려 해도, 창고 밖으로 옮기는 일 자체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관 지구에 본가가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창고에 병풍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훌륭한 병풍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시집온 지 50년이 넘었지만 병풍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우리 집에는 없을 거야”라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병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집에도 병풍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24년 요리 료칸 쓰루가타에 전시된 도미타 게이센의 ‘후가쿠 원망도’(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2024년 요리 료칸 쓰루가타에 전시된 도미타 게이센의 ‘후가쿠 원망도’(사진 제공: 구라시키 상공회의소)

병풍 축제 부활을 위해 어떻게 준비했나요?

오카

병풍 축제는 미관 지구에 사는 분들의 협조 없이는 실현할 수 없습니다.

집집마다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이해를 얻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살고 싶으니 사람이 늘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람이 늘면 치안이 나빠진다”, “나이가 들어 부담되는 일은 할 수 없다”, “관광업이 돈을 벌도록 돕고 싶지 않다” 등의 이유로 거의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회장님들을 모시고 병풍 축제에 대한 제 생각을 전했습니다.

“상업 진흥을 목적으로 병풍 축제를 여는 것이 아니라,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 지구로 지정된 구라시키의 마을을 역사와 문화와 함께 후세에 남기기 위해 열고 싶습니다. 병풍 축제를 통해 구라시키 마을의 훌륭함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동네 분들은 “그 정도로 생각이 확고하다면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듯 마지못해 찬성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마을 전체가 준비에 나섰고, 2002년 아치 신사의 추계 예대제에 병풍 축제가 부활했습니다.

동네 분들은 처음에는 상당히 소극적으로 찬성했지만, 실제로 병풍 축제 준비가 시작되자 동네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즐기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니까요.

2019년 가타라이자 오하라 혼테이에 전시된 무나카타 시코의 ‘온군리도’(사진 촬영: 요시노 나코)
2019년 가타라이자 오하라 혼테이에 전시된 무나카타 시코의 ‘온군리도’(사진 촬영: 요시노 나코)

부활한 병풍 축제의 반응은 어땠나요?

오카

부활한 2002년 방문객은 약 5만 5천 명이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에 놀랐습니다. 병풍을 장식해 협조한 집은 33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개최 전에는 통행량이 늘면 시끄러워지거나 치안이 나빠질까 걱정했지만, 막상 해 보니 무척 즐거웠다고 했습니다.

동창이 찾아와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 기뻤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설문조사를 했는데, 시작 당시에는 지역 주변에서 온 방문객이 많았습니다. 히로시마 방면에서 온 방문객도 많았습니다.

현재의 병풍 축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아치 신사는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축제가 끝난 뒤 아치 신사 관계자에게 “가을 축제가 지역 전체의 행사로 활기를 띠어 즐거웠습니다. 신사와 마을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무척 흥겨웠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2019년 아치 신사에 전시된 구라시키 예술과학대학의 2019 병풍 프로젝트 작품들(사진 촬영: 요시노 나코)
2019년 아치 신사에 전시된 구라시키 예술과학대학의 2019 병풍 프로젝트 작품들(사진 촬영: 요시노 나코)

그 후 상황은 어떻게 됐나요?

오카

2002년 이후 코로나19로 2년간 중단된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아치 신사의 추계 예대제 시기에 병풍 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병풍 축제에 참여하며 매년 즐기는 행사가 됐다고 합니다. 매년 어떤 방식으로 꾸밀지 생각하는 것도 즐거운 모양입니다.

2024년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열렸으며, 방문객은 총 약 5만 명이었습니다.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병풍을 장식한 집은 35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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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쓴 시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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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노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전문 취재·인터뷰 작가이자 포토라이터입니다. 지역의 문화·지리·역사·음식에 정통합니다. 기업 직원 인터뷰와 사례 소개, 채용 콘텐츠도 제작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산책합니다. 구라시키 관광에 깊이와 풍미를 더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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