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로서의 ‘오하라 미술관 본관’ ~ 1930년 당시 최첨단이었던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친환경 로마 신전풍 건축물(구라시키 건축 기행 Vol.5)

건축물로서의 ‘오하라 미술관 본관’

구라시키를 대표하는 문화 시설인 ‘오하라 미술관’입니다.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후원하던 서양화가 고지마 도라지로에게 맡겨 수집한 서양 미술, 이집트·중근동 미술, 중국 미술과 고지마의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1930년(쇼와 5년)에 개관했습니다.

건립의 계기는 이듬해인 1929년 고지마 도라지로가 세상을 떠난 뒤, 사쿠즈에 미술관을 세우려던 구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오하라 미술관 본관’이라고 불리는 건물은 흔히 ‘그리스 신전 같은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 목조 건축물이 늘어선 미관 지구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구라시키의 거리 풍경과 오하라 마고사부로, 고지마 도라지로를 향한 건축가의 배려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건축 설계를 맡은 인물은 ‘야쿠시지 가즈에’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건축물로서 ‘오하라 미술관 본관’에 주목해 살펴봅니다.

오하라 미술관 내부는 원칙적으로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촬영 허가를 받았습니다.

기재된 내용은 2022년 9월 기사 게재 당시의 정보입니다. 현재 정보와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오하라 미술관이란

이마바시 다리와 오하라 미술관

오하라 미술관은 1930년(쇼와 5년)에 개관한, 일본 최초의 서양 미술 중심 사립 미술관입니다.

현재 본관, 분관, 공예·동양관, 신고지마관(가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2022년 9월 현재 분관이 휴관 중이어서 본관에서는 근대 일본 서양화와 현대 미술도 전시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서양 미술을 중심으로 전시합니다.

아트리움
아트리움

건물의 기본 구조는 1930년 개관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91년(헤이세이 3년) 증축 공사를 거쳐 본관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바뀌었습니다.

  • 본관
  • 본관과 관리동 사이의 ‘유리 아트리움’
  • 본관 뒤편의 ‘신전시동’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 클로드 모네의 《수련》, 폴 고갱의 《향기로운 대지》 등 오늘날 높은 평가를 받는 명화들이 본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하라 미술관은 ‘근대 명화를 소장한 미술관’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고지마 도라지로가 작품을 수집하던 때부터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수집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아르코’를 통한 창작 지원, 기획전과 작품 구입 등을 통해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을 지원하고 문화 사업에도 힘쓰는 미술관입니다.

일본 미술의 발전을 위해 진정한 서양 미술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마고사부로와 도라지로의 뜻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하라 미술관 ~ 볼거리는? 모네, 엘 그레코 등 유명 작품만이 아닌, 끊임없이 진화하는 미술관

오하라 미술관 본관을 설계한 건축가 ‘야쿠시지 가즈에’

야쿠시지 가즈에
야쿠시지 가즈에
사진: 우에다 야스시 씨 소장

오하라 미술관 본관은 오카야마현 소자시 출신 건축가 야쿠시지 가즈에가 설계했습니다.

유린소와 다이이치 고도 은행 구라시키 지점(주고쿠 은행 구라시키 혼마치 출장소, 현재의 ‘신고지마관(가칭)’) 도 야쿠시지 가즈에가 설계했습니다.

1909년 도쿄제국대학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육군성 기술자로 활약했고, 이후 천황이 임명한 기술자가 되었지만, 오하라 마고사부로의 요청에 따라 사직하고 구라시키 견직(현재의 주식회사 구라레) 이사로 취임했습니다.

이사로 취임한 사실을 보면 야쿠시지 가즈에는 건축 지식뿐 아니라 회계와 시설 관리 등 종합적인 경영 감각을 갖추고, 오늘날 말하는 매니지먼트 능력도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은 오하라 미술관 본관 건설에도 발휘되었습니다.

공사 기간은 불과 ‘6개월’ 정도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짧은 기간에 완공되어, 설계·견적·공정 관리·예산 관리 등을 실행하는 능력과 역량이 뛰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본관 건축은 그리스 신전풍이 아닌 ‘로마 신전풍’

로마 신전풍

오하라 미술관 본관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입구의 ‘기둥’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신전 같은 건물’

흔히 이렇게 불리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로마 신전풍 건축 양식’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네 가지입니다.

  • 그리스 신전은 ‘기둥 건축’으로, 언덕 위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신전 주변에 기둥을 세웠습니다.
  • 로마 신전은 시내 광장이나 도로를 마주 보고 세워졌기 때문에 정면 디자인을 중시했습니다.
  • 정면 페디먼트(상부 삼각형 지붕의 벽 부분)에 장식이 없고 단순합니다.
  • 그리스 신전에서는 건물 사방에 설치했던 돌계단이 로마 신전에는 정면에만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오하라 미술관 본관은 그리스 신전풍이 아니라 로마 신전풍 건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관은 석조가 아닌 철골이 들어간 철근 콘크리트 구조(SRC 구조)

벽은 모르타르

‘로마 신전풍’ 건물이므로 석조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사실 오하라 미술관 본관은 ‘철골이 들어간 철근 콘크리트 구조(SRC 구조)’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고층 빌딩 등에 흔히 적용되지만, 1930년 당시로서는 최신 건축 방식이었습니다.

야쿠시지 가즈에는 육군성에서 근무하던 시절 간토 대지진을 겪고 육군 시설 복구에 힘쓴 경험이 있어 관련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미술품을 보관하는 장소인 만큼 더욱 견고한 건축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돌처럼 보이는 벽은 모르타르(시멘트에 모래를 섞은 것)로 마감했습니다.

돌을 사용한 곳은 정면 계단이 있는 기단 부분뿐이며, 이곳에는 곤코산(현재의 아사쿠치시 곤코정) 화강암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기단
대지면보다 한 단 높게 만든 건물의 기초

기둥 위쪽의 장식(‘이오니아식’ 디자인)도 모르타르로 마감했습니다. 당시 오하라 가문의 재력이라면 모든 부분을 돌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야쿠시지는 그렇게 하지 않고, 건축비를 어떻게 줄이면서 더 훌륭한 건물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는 오하라 가문을 배려한 동시에 야쿠시지 가즈에의 설계 철학과 경영 감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골

철골이 들어간 사실은 1991년 증축 공사 때 밝혀졌습니다.

현재 본관 1층에서 ‘아트리움’이라고 불리는 유리 건물로 들어갈 때 철골이 드러나 있습니다.

철골

이를 어떤 의도를 담아 만든 ‘오브제’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다고 하지만, 사실 본관에 사용된 철골입니다.

깔끔하게 연마되어 있지만, 개관한 지 90년이 넘은 지금도 건물을 계속 지탱하고 있습니다.

자연 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친환경 구조’

2층 전시실의 천창(현재는 조명 기구)

오하라 미술관 본관이 건설된 1930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조명일 것입니다.

오늘날 미술관은 오하라 미술관뿐 아니라 대부분 인공조명을 사용합니다. 이는 그림이 햇빛에 바래거나 색이 옅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림에 자외선은 큰 적입니다.

하지만 1930년 당시에는 전기는 물론 조명 기구도 귀하고 비쌌습니다.

그래서 자연 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조로 설계했으며, 현재 2층 전시실에는 천창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둥근 창으로 들어오는 빛
둥근 창으로 들어오는 빛
채광창을 통해 1층으로 빛을 들임
채광창을 통해 1층으로 빛을 들임

또한 현재 오하라 미술관의 상징적인 존재인 ‘둥근 창’도 2층 계단실로 들어온 빛을 1층 사무실(현재는 사용하지 않음)의 유리 천창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설치했다고 합니다.

오하라 미술관 본관의 외관과 내부 살펴보기

그럼 건물에 주목해 오하라 미술관 본관을 살펴보겠습니다.

본관 외관
본관 외관
로마 신전풍 건물
현관등은 고지마 도라지로가 미술관 건립을 꿈꾸며 미리 구해 둔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 신전풍 건물
현관등은 고지마 도라지로가 미술관 건립을 꿈꾸며 미리 구해 둔 것이라고 합니다.
당초 설계를 변경해 고지마가 소유했던 현관등을 설치한 데에는 야쿠시지 가즈에가 고지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초 설계를 변경해 고지마가 소유했던 현관등을 설치한 데에는 야쿠시지 가즈에가 고지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본관 입구
본관 입구
문을 열면 고지마 도라지로의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소녀’가 보입니다
문을 열면 고지마 도라지로의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소녀》가 보입니다
1991년 증축 공사 때 모습을 드러낸 철골
1991년 증축 공사 때 겉으로 드러난 철골
깨끗하게 닦아냈다고 합니다
깨끗하게 닦아냈다고 합니다
아트리움
아트리움
아트리움 안쪽 본관 쪽 벽은 모르타르로 마감
아트리움 안쪽 본관 쪽 벽은 모르타르를 두드려 마감했습니다
벽 차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있어도 건물의 내구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벽 차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처음에는 그 아래에 창문이 있었습니다). 이것만 있어도 건물의 내구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본관 1층 사무실(현재는 사용하지 않음)
본관 1층 사무실(현재는 사용하지 않음)
개관 당시에는 사무실이 있는 곳에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현재는 아트리움을 지나야 하므로 이용 불가)
개관 당시에는 사무실이 있는 곳에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현재는 아트리움을 지나야 하므로 이용 불가)
2층의 둥근 창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는 2층의 둥근 창
현재는 오하라 미술관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둥근 창’
현재는 오하라 미술관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둥근 창’
둥근 창의 잠금장치는 독특한 모양
둥근 창의 잠금장치는 손에 잘 맞는 독특한 모양입니다
둥근 창을 통해 이오니아식 기둥이 잘 보인다
둥근 창을 통해 이오니아식 기둥머리가 잘 보인다
2층 전시실 문 위쪽에도 채광용 창이 있다(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2층 전시실 문 위쪽에도 채광용 천창이 있었다. 현재는 인공 조명을 사용한다
증축 공사 후에는 관람 동선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뒷문’이었기 때문에 계단은 소박하게 만들어졌다
증축 공사 후에는 관람 동선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옥상 점검과 관리를 위한 계단이었기 때문에 소박하게 만들어졌다

왜 유럽 건축일까?

오하라 미술관 본관은 유럽 건축 양식

그런데 그리스 신전풍인지 로마 신전풍인지 따지기 전에, ‘오하라 미술관 본관은 왜 서양 건축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으신가요?

미관 지구에는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거리 풍경이 남아 있으며, 1930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야쿠시지 가즈에는 유린소와 제일합동은행 구라시키 지점(현재의 ‘신고지마관(가칭)’) 등 당시 주류였던 서양식·일본식 건축물도 설계했습니다. 아마 기술적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신전 양식이라는 서양 건축·예술의 원점으로 돌아간 건물을 설계함으로써, 미술·예술 작품 역시 모든 시대를 초월한 건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노트르담 세이신 여자대학 명예교수 우에다 야스쓰구 씨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오하라 미술관을 방문하면 미술 작품에 눈길이 가지만, 본관도 건립된 지 90년이 넘은 만큼 건물 자체에도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오하라 미술관 앞에 놓인 이마바시 다리도 사실 야쿠시지 가즈에가 설계했으며, 고지마 도라지로가 용을 새겼습니다.

이마바시 다리에 새겨진 용
이마바시 다리에 새겨진 용

오하라 미술관 앞의 돌담은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곡선(몸통)’으로 기존 돌담을 보수한 것으로, 이마바시 다리와 일관된 디자인 콘셉트에 따라 조성한 것이 아닐까 하고 우에다 교수는 말했습니다.

이마바시 다리와 오하라 미술관
이마바시 다리와 오하라 미술관

설계자는 같더라도시대가 다른 건축물을 일체감 있게 설계하는 것은 구라시키 미관 지구다운 도시 만들기라고도 느껴집니다.

야쿠시지 가즈에는 건축가로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관 지구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하라 미술관에 전시된 미술 작품뿐 아니라 건물에도 시선을 넓혀 보면 평소와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취재 협조
  • 기사 감수: 노트르담 세이신 여자대학 명예교수 우에다 야스쓰구, 우라베 설계 주식회사
  • 촬영: 요시노 나코(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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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쓴 시민 작가
도이 프로필
도이 겐고

1979년생, 구라시키시 거주
두 아이의 아버지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블로그와 이벤트 운영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미디어를 운영하는 일반사단법인 Haretoco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프리랜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관 지구를 직접 즐기면서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정보를 전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웹 미디어가 될 수 있도록 멤버들이 한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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